오늘은 뭘 먹지?
먹는 걸 좋아한다.
자연스럽게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이 나름 삶의 즐거움이었고,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임신 10달 동안 극심한 소화력 저하를 경험했다.
생전 아무 탈이 없던 라면조차 5천보 이상을 걷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아 명치가 아팠다.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밀가루가 소화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다.
먹고 싶은 것은 많은데 받쳐주지 않는 신체의 불균형은 갑자기 내리는 소낙비처럼 당황스럽고 대처가 어려웠다.
대안책이 필요했다.
나의 먹고 싶은 마음을 달래줄 무언가.
나의 선택은 돌고 돌아 ‘먹방’을 보는 것에 정착했다.
《고독한 미식가》《리틀 포레스트》
내가 선택한 ‘먹방’은 바로《고독한 미식가》였다.
내 기준에서 많이 먹는 것보다는 맛있게 먹는 것, 다양하게 먹는 것이 중요했기에 선택한 드라마였다.
한 때는 너무 푹 빠져서 고로 아저씨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맛집을 찾아다니는 직업을 가지고 싶다고 꿈꾸기도 했을 정도.
벌써 시즌 10이 나올 정도로 팬층이 꽤 두꺼운 이 드라마는 그야말로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새로운 지역에 가서 맛있는 점심을 먹는 것.
나름의 기준으로 매 끼니 신중하게 먹을 것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그 루틴이 묘한 안정감을 준다.
《리틀 포레스트》는 그야말로 더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시골에서 사는 주인공이 계절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올 뿐이다.
하지만 왜인지 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편안한 기분이 든다.
‘내가 먹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남이 먹는 걸 보게 되는 걸까’
매번 찾아 보면서도 내 머리 속에서 떠다녔던 질문이다.
먹는 것 = ‘안도감’
이번에 읽은 책에서 드디어 힌트를 찾았다.
내가 《고독한 미식가》 《리틀 포레스트》 등의 영상을 보고 안정감을 느꼈던 이유.
이제는 아침 식사로부터 다독임을 받고 있습니다. 자신이 자신의 위안이 된다는 것, 그리고 위로의 방법이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라는 점. 아마 이런 기분을 느껴봤기 때문에 제가 요리에 빠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시간이 아침을 만드는 시간이고, 그 식사 덕분에 고단하고 지난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것이겠죠.
『재생의 부엌』 21페이지 중에서
잘 차려진 한 끼 식사를 먹는 것.
그 과정 안에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내 보자는 의지와 정성이 담겨 있다.
그러한 영상을 보고 있으면 나 역시 내 하루를 조금 더 잘 챙겨보자고 다독이게 된다.
이 책 속에 담긴 무수한 아침식사들이, 내가 보았던 드라마와 영화의 숱한 식사 장면들이 나에게 묘한 위로감을 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이다.
『재생의 부엌』 좋았던 구절들
집에 있을 때는 거의 에어컨을 틀지 않습니다. 스미다 강과 가깝고 그 강을 건너는 6차선 다리가 있어서 큰 차가 많이 다니는 새벽에는 소음 때문에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어도, 낮에는 창문을 다 열고 선풍기를 틀어 간간이 부는 강바람을 즐기는 편입니다. 열어둔 베란다나 창으로 꽤 시원한 바람이 불기도 하지만, 움직이면서 땀이 나는 것을 적당히 즐기기도 하고, 애써 흘린 땀이 에어컨 바람에 식어서 한기가 느껴지는 걸 싫어합니다.
『재생의 부엌』 135페이지 중에서
에세이의 묘미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땀’이라는 단어에 ‘애써 흘린’이라는 단어가 붙다니.
나였다면 ‘흥건히 흘린 땀’ 또는 ‘눈치 없이 흐르는 땀’ 등 땀을 흘리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듯 ‘땀’을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오히려 에어컨 바람, 한기가 땀의 열기를 식혀버린다는 인식이 담겨있다.
나와는 다른 사람의 시선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에세이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와 나의 공통점을 찾았다.
삶은 무가 저를 괴롭힌 적도 없는데 싫었습니다. (중략) 잔소리가 싫어서 가끔 먹긴 해도 삶은 무가 씹히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엉성한 식감과 이도 저도 아닌 맛에 기분이 나빠져 얼른 김치를 입에 넣었습니다.
『재생의 부엌』 243페이지 중에서
나 역시 씹었지만 씹지 않은 듯 흐물거리고 물컹거리는 무를 꽤나 오랫동안 좋아하지 않았다.
자연히 제삿날 먹는 뭇국이 반가울리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저자의 글을 읽으며 괜스레 반가웠다.
하지만 저자는 결국 삶은 무를 먹게 되었다.
물론 지금의 나도 그렇다.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 쌓이고, 그러는 동안 그 물컹거리는 무를 왜 먹는지, 무슨 맛으로 먹는지 자연히 몸이 알게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그 끝에 나온《소고기 무조림》레시피가 반가웠다.
쉬운 듯 어려웠던 요리.
저자의 레시피가 왜인지 친근하게 느껴져서 냉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처럼 아직은 무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에게, 달큰한 무의 참된 맛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하고 싶다.
다양한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특히 《삿포로 큰 병으로!》를 읽으며 잘 마시지 않던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자주 보았던 《고독한 미식가》의 잔상 덕분인지 마을 한편 작은 이자카야 풍경이 너무도 눈앞에 선했다.
저자가 시킨 안주들과 삿포로 맥주는 틀림없이 완벽한 순간을 만들어주었을 것이다.
바로 앞 주방에서 전갱이 굽는 향이 넘어오자 광대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안주를 기다리면서 웃는 게 쑥스러워 맥주잔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재생의 부엌』 159페이지 중에서
하필 가을 바람으로 스산해진 날씨가 한없이 아쉬운 순간.
여전히 햇볕이 쨍쨍 더웠다면 당장 편의점으로 달려가 맥주를 샀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자주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었지?’ ‘오늘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와 같은 생각들을 했다.
바쁜 와중에도 정성스럽게 준비한 나를 위한 한 끼 식사가 일상을 살아내는 힘이 된다는 것.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자신의 일상으로 말미암아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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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책,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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