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북카페에 앉아서 『강원국의 글쓰기』 책을 읽고 있었다. 읽다 보니 쓰고 싶고, 쓰다 보니 잘 쓰고 싶어서 '글쓰기' 관련 책을 열댓 권 주문하고 벌써 4권째 읽던 참이었다.
밑줄까지 그으며 열중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글쓰기는 행동인데, 나는 왜 오로지 읽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지?' 이건 마치 수영을 하고 싶어 수영 책을 사놓고 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 모양새였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맛집부터 관광지까지 모든 일정을 정해두어야 안심하고, 물건을 구매할 때는 적어도 며칠은 검색해 보며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이걸 사는 게 최선인가' 고민하는 나였다. 결국 '글쓰기'조차도 책으로 납득이 될 만큼 관련 지식이 쌓인 이후에나 시작할 심산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습관은 이토록 무의식적이다.
잽싸게 가방을 챙겼다. 실천해보지 못한, 그래서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해져버린, 앞서 읽은 글쓰기 관련 책 3권을 얼른 체득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집에 돌아와 책 3권을 다시 책장에서 꺼냈다. 『표현의 기술』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모두 '글쓰기' 관련 책이지만 독자에게 던지는 주제는 조금씩 달랐다. 이미 읽은 책들이지만 말 그대로 난 그저 '읽었을' 뿐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꼭꼭 씹어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아직 내 것이 아니다.
'글쓰기'를 주제로 정하고 가장 먼저 읽었던 『표현의 기술』.
평소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간단하다. 스르륵 잘 읽히는 책. 물론 어려운 책도 도전정신이 불타올라 읽기는 하지만, 아직 내공이 부족해서 주춤할 때가 많다. 유시민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건 내가 평소 그분을 '토론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말하듯 써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워 들었기 때문에 그분의 글쓰기 방법이 분명 도움이 될 거라 지레짐작했다.
『표현의 기술』은 '논리 글쓰기 지침서'와 같은 책이다. 예술 글쓰기와 달리 논리 글쓰기는 누구나 연습을 통해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 대신 많이 '읽고' 많이 '써야' 가능하다는 철칙이 주어졌다. 글쓰기에 지름길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글쓰기를 주제로 하는 책답게 가장 앞 부분에 주어진 질문은 아래와 같다.
'왜 쓰는가'
질문만 들어서는 답변하기가 어려워 저자가 예시로 알려준 <조지 오웰의 글 쓰는 이유>를 읽어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기로 했다.
◎ 조지 오웰, 글 쓰는 이유
1)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2)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
3)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
4) *정치적 목적
* 정치적 :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
3) 은 절대 아닌 듯 하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글쓰기를 목표로 하고 있지 않다. 애초에 그럴 자신도 없지만.
1) 2) 4) 번을 다시 한 번 자세히 읽어보았다.
'나는 나를 돋보이고 싶은 욕망에 글을 쓰는가?'
'나는 아름다움을 중요시 하던가?'
'나는 어떤 의도로 글쓰기를 하고 있는가?'
한 개를 골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인지 명확하게 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분명 이 질문은 글을 쓰는 동안 늘 나의 머릿속에서 떠다닐 것이 분명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글쓰기를 하고자 하는 이유는 4) 정치적 목적에 가깝다는 결론이 났다. 애초에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를 되짚어보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내 글을 통해 누군가가 정보를 얻고 위로받길 원했다. 글솜씨가 없어 늘 가장 만만한 맛집 관련 글만 적어왔지만, 블로그를 처음 시작한 게 2019년. 이제는 조금 더 밀도 높은 글을 쓸 때도 된 것 같다. 아, 물론 이유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고 차를 몰아야 샛길로 셀 확률이 적다는 건 명확한 사실이니까, 나는 그러기로 했다.
글 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됩니다.
📖 42페이지 중에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바꾸려면 우리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는 누군가가 있어서 내 글을 읽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말입니다. 어떤가요? 정치적 글쓰기, 인생을 걸어 볼 만한 가치가 아주 없지는 않죠!
📖 102페이지 중에서
독자가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남이 쓴 글에 공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남의 글에 감정 이입하면서 독자의 감정 이입을 유도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152페이지 중에서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 231페이지 중에서
독서노트에 저장해둔 구절들. 더 많이 저장해뒀지만 가장 공감했던 구절들로 추려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의 결론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 글쓰기는 나를 표현하는 일이다.
- 글을 잘 쓰려면 문장쓰는 기술, 그 안에 담긴 생각, 감정 이입이 중요하다.
- 가장 중요한 감정 이입은 결국 공감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 글쓰기 철칙은 많이 ‘읽고’ 많이 ‘써야’ 한다.
위와 같은 결론을 통해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1) 일단 많이 읽자.
문장쓰는 기술도, 그 안에 담는 생각도 공감하는 능력도 결국 독서가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변하지 않는 진리인 듯 하다. 글쓰기에 독서는 필수다.
2) 서툴러도 쓰자.
읽는 것만이 능사라고 생각했다. 아직 나는 쓸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고, 어쩌면 게으름을 피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부터는 부족해도, 서툴러도, 창피해도 일단 쓰기로 결정했다. 지금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고, 많이 써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쓰고 보니 조촐하지만 내용을 다시 한 번 곱씹으며 정리하고나니 머리는 맑아지는 기분이다. 아직 더 살펴봐야할 것 들이 있을 것 같지만 자꾸만 주춤하면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 여기서 여기서 마무리한다. 앞으로 읽어나갈 글쓰기 책을 통해 더 많은 부분을 흡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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